인디언식 기우제 ☂

2021. 8. 22. 16:02🔮 비밀책장/🤸‍♂️ 흔한 잉뿌삐의 dailygram


오늘 들은 노래는-


 

인디언식 기우제

 

비가 온다 드디어-
그동안 유독 덥고 쨍쨍한 마른장마의 시기를 보내며 마음속으로 수도 없이 기우제를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장난처럼 기우제를 검색하다 "인디언식 기우제"라는 문구를 발견했다.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한다.
성공률 100%의 기우제라니,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 이유는, 그들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계속하기 때문이다.

그 말에 갑자기 답답하던 마음 한구석이 약간 시원해졌다.

올여름, 땀 흘려 샛강까지 뛰어와서 엉덩이에 물집 나게 앉아 눈이 빠지게 기사를 쓰던 나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런데 인디언들이 정말 비가 올 때까지 계속 기우제를 지냈을까?
아마 간절함의 표현과 더불어 사회적 운동으로 부족의 결속을 다진다는 의미도 들어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사실 여부는 중요치 않다.
그저 '나도 될 때까지 하면 되겠지,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노력하면 된다.' 라며 마음을 다잡아 본다.

 

가끔은 '난 인생 1회 차인 게 분명해!'하는 생각이 든다.
가끔 주위를 둘러보면 인생 3회 차는 되는 것 같은 통찰력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나는 그저 애송이 같다. (하지만 애송이 같은 나 자신, 사랑해(!?)
나는 사실 모든 게 어렵다. 삶도, 일도, 사랑도, 매번 처음 하는 것들 투성이다.
2n 년의 경험 빅데이터와 사회생활로 성숙해지고 감정을 숨기는 것에도 꽤 능숙해졌지만, 실은 여전히 뚝딱대는 사람이다.
게다가 처음 겪는 일에는 꼭 어린아이처럼 고집도 써보고 굴러보고 생생하게 느낀 다음에야 대처 메뉴얼이 생기곤 한다.
자기처럼 구르지 말라고 미리 일러주는 수많은 조언의 책들이 쏟아지는데도, 그 지혜를 완전히 흡수하지 못하고 여전히 그러더라.
그러나 그렇게 직접 겪으며 한번 만들어진 메뉴얼들은, 다시 같은 상황이 왔을 때 의연하고 멋들어진 어른처럼 능숙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내 삶의 길잡이가 되어 주곤 했다.
그러니 그냥 나를 믿는 수밖엔 없겠다.
앞으로도 열심히 구르며 이 세상 대처 메뉴얼을 써 내려갈 미래의 나, 화이팅이다. 
(^~^)

 

'내 몸은 지난 3개월간 내 행동의 결과이다.'라는 말이 있다.
내가 먹은 것, 움직인 것에 대한 결과가 현재의 몸이라는 것이다. 그 말에 정말 동의한다.
슬프게도 한동안 운동을 멈추고 밤마다 열심히 과자와 젤리 파티를 벌인 내 몸은 2kg의 꽉 찬 증량과 함께 저질 체력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추억들과 포트폴리오를 대신 얻었다.

그러니 내가 한 일들에 대해 거두어들이며 기뻐할 것은 기뻐하고 책임질 것은 담담하게 책임지면 된다.
돌아보면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도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어떻게든 살아가게 되었다.
그냥 그렇게 살면 될 일이다.


무엇을 얻지 않았다고 느껴도 괜찮다. 그래도 100세 시대 인생에서 해볼 만한 경험이었다.
모든 노력과 경험이 헛되지 않는다는 것은 나중에 드러날 것이다. 지금은 모를 수 있다.
지금은 이게 맞을까 저게 맞을까 싶지만 하나하나 두드려보면 내 자리가 있겠지.
나는 한동안 계속 흔들리다가 이내 자리를 잡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길을 찾을 것이다.

마음껏 흔들려라, 그리고 곧 중심을 잡아라.  가야 할 방향만 잃지 않는다면, 어떤 길인들 중요할까.

 


 

특별한? 내 색깔은 무엇인가

 

자소서를 쓰면서도 진짜 나를 어느 정도 보여줘야 하는 건지, 기업이 원하는 모습만을 보여줘야 하는 건지 막막하다.
주입식 교육으로 고유한 모양을 틀에 욱여넣어 하나의 모양으로 만들어 놓고 이제 와 '당신의 특별함'을 보여달라는 문구에 기가 차기도 하다.
나는 별로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신들린 능력이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저 동료들과 잘 지내고, 내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신나게 운동하고 집에 돌아와 음악을 배경 삼아 일기 쓰는 것을 좋아하는 평범한 한 사람일 뿐인데 어떻게 마음을 사로잡아야 할까?  ...언제나 겸손하라고 들어 온 사람은 이런 식의 PR이 약간 거북하다.

게다가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취업해버리는 바람에 아직 취업 면접 자리는 많이 경험하지 못해 더 갈피를 못 잡겠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봐도, 주변을 둘러봐도 다들 알아서 잘하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금 울적해졌다.
미래에 이런 내가 취업을 하고 (물론 과거에 해봤지만)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면 누군가가 지금의 나를 보면서 위로받았으면 좋겠다.  아무튼 오늘의 나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매우 우울하기 때무니다...ㅠ-ㅠ엉엉엉

 

모든 사람은 자신의 색과 이미지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동생은 무지개 재질의 사람으로 느껴진다. 알록달록 반짝거리다가 어느 날 어느 각도에서 보면 흐려 보이기도 한다.  그러다 오히려 흐릿하고 비가 올 때 더 존재감을 발하며 반짝반짝 빛난다. 
한 언니는 뭔가 쿼카 같다는 느낌이 든다. 쿼카가 인간 세상에서 적응하며 야무지게 행동하는 느낌이 있다. 그러나 쿼카 특유의 사교성과 뽀짝함, 들뜬 모습은 숨길 수 없다. 
최근에 가까워진 한 친구는 겉바속촉  용감한 쿠키 같다. 나와 결이 정말 비슷한 것 같은데 어떤 면은 또 다르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떤 사람은 아몬드 같다. 내실이 단단하고 영양 밀도가 높다. 과일처럼 튀는 맛은 아니지만 고소하고 든든한 베이스가 되어주는 느낌이다.   
조커 카드 같은 사람도 있다. 매사에 즐겁고 훌렁훌렁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 할 일은 각 잡고 날카롭게 해 놔서 가끔 놀랍다. 
또 어떤 사람은 호숫가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가지같은 글을 쓴다. 

이런 느낌은 시기마다 조금씩 재질이 달라지지만, 본질의 느낌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나는 '특별한'이라는 단어가 좀 멀게 느껴진다. 모두가 그저 팔레트에 있는 물감의 다른 색들로 느껴질 뿐이다.
그리고 그 색들은 자신의 빛을 당당하게 드러낼 때 가장 아름다웠다.

나는 어떤 이미지, 어떤 색을 띠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처음 며칠은 남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자소서를 작성했다가, 이내 조금씩 내 색깔대로 바꾸기 시작했다.
꽁꽁 숨기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내 색을 보여줄 때가 왔다. 그러려면 용기가 더 필요하다. 
이렇게 저렇게 포장하는 것 같아 내가 살짝 가증스럽기도 하지만, 내가 자소서에 설명하는 그런 사람에 더 가까워지기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손가락을 놀려본다.

 


 

이 감정들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지난주에 내 글들을 찬찬히 읽어보다가 나는 글을 쓸 때 주제가 무엇이든 진심과 애정을 듬뿍 담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정보 전달 글이나 기사 같은 류를 제외하고는 애정과 진심이 없이는 단 한 줄도 마음껏 써지지 않았다.
그날그날 듣는 플레이리스트에 따라 글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경우도 많았다.

나는 살면서 항상 초연하고 무딘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했지만, 이제 그만 내가 '감정'에 민감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보기로 했다.

요 며칠간은 혼란스러움과 격한 감정의 변화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취업, 기사, 사람,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고민이 휘몰아친 데다가 몸 컨디션도 올해 중 가장 안 좋았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잘 모르겠어서 더 혼란스러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했다.
평소처럼 평정심에 집착하느라 외면하고 싶었던 건지 진짜 몰랐던 건지 모르겠지만, 
이 바쁜 시기에 생각보다 너무나 평온한 마음 상태에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정말 오랜만에 생체 리듬이 달라지고 나도 모르게 뜯고 있던 입 안과 손가락에서 피가 주륵주륵 나는 것을 보고 문득 알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내가 나에게 내리는 처방으로 이 글을 쏟아내고 있다.


'나는 두려워',  '이게 삶이지!',  '이런 게 있었군', '이상하게도 싫지 않아', '이건 왜 그런 걸까?', '나는 당신이 좋아', '나는 당신이 정말 싫어', '에라 모르겠다', '반갑군!', '내 자리가 있을까', '바쁘지만 즐거워', '뭘 한 거지', '할 수 있을까?', '잘 될 거야', '앞으로 어떤 길을 가게 될까', '어떻게든 될 거야', '그런데 무서워', '바보 같다'  ... '글쟁이답게 이런 덩어리들을 글에 녹여보는 건 어떨까?'

그래서 그냥 즐기기로 했다.
약간 변태 같은 생각이지만 이런 걸 어디에 말하지 못해서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누구도 힘들지 않고 이 순간의 감정들은 그저 글자로 남을 테니까.
또, 이런 감정들이 원동력이 되어 나를 새로운 곳으로 데려다 줄지도 모르니까.

 


 

우리가 얻어갈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글 쓰기를 배우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리고 4개월간 쉬지 않고 열심히 글을 썼다.
교육생 생활이 중반쯤 이르렀을 때, 여러 교육생들과의 대화를 통해 이곳에 아무것도 기대하고 오지 않았던 사람들마저 
의외로 많은 것을 얻었다고 인정할 만큼 큰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일았다.


누군가는 인맥과 동료를, 누군가는 좋은 친구나 사랑을, 누군가는 영감을, 누군가는 포트폴리오 작품과 다양한 결과물들을, 누군가는 자신감을, 누군가는 인생을 살아갈 원동력이 될 즐거운 추억 중 하나를 얻었을지 모른다.
나 또한 좋은 사람들을 얻었고, 게으른 나를 채찍질해서 어떻게든 결과물로 만들어 낸 「어쨌든, 포트폴리오」도 얻었고, 누구의 말마따나 한여름밤의 꿈같은 추억들도 얻었으며, 나와 내 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며 몰랐던 것들을 새로 알게 된 기회도 얻었다. 

다음 주부터는 더 많은 일이 일어나겠지. 
우리는 면접을 보고, 누군가는 이른 취업을 하고, 누군가는 그런 다른 사람들을 축하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100퍼센트 같이 마음껏 기뻐해주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할지도.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뻔하고 아름다운 말은 집어치우는 게 좋겠다. 그렇게 우리는 계속 기뻐하고 절망할 것이다. 


다만 그 중간중간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운 순간들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로 주고받는 짧은 농담과 미소들, 아침에 반갑게 하는 인사, 힘내자는 응원들, 소소한 간식을 나눠주는 손길들,
고된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의 안도감과 편안함, 어려운 글을 쓰고 나서 보상처럼 먹는 간식과 프렌즈를 보는 시간들, 아침에 커피를 사서 수혈하듯 들이켰을 때 깨어나는 감각들. 그 순간들은 모두 진심이고 다시 느낄 수 없는 시간일 테니까.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진 않는다. 그저 순간순간을 즐기고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어쨌든 목표를 그렇게 설정해 본다.

또 하나, 얻는 것들 뿐만 아니라 나는 과연 무엇을 남길 지도 생각해보자.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나는 살면서 이 사실을 기억하며 행동한 뒤에 후회한 적이 없다.
후회의 연속인 인생에서 후회한 적이 없는 말이라니, 정말 멋지지 않은가.

주는 사람의 입장이든 받는 사람의 입장이든 우리 모두는 서로의 영향을 받는다.
당신이 한 모든 말과 행동은 당신으로 남는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남을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그렇다고 나의 행동을 돌아보며 겁먹을 필요는 없다. 그저 지금처럼 나답게 행동하면 될 일이다.

 

후에 이 마음을 견디지 못하고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과거의 자신이 생각난다고 했다. 조급해하지 말라고 했다. 조급하면 될 일도 안 된다고.
최소한 이번 일주일은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말고 나에 대해 더 생각하고, 초심도 떠올려 보라고 했다.
선택의 기로에서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라는 것도.
이 길이 맞을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결국 선택은 오롯이 나의 몫이다.
더 긴 시간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약간의 시간을 들여서라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친구와 통화를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아니 두결 세결 편해졌다.
문득 이렇게 온 마음으로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다니 꽤 괜찮은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원동력으로 돌아오는 한 주도 힘내서 살아보기로 마음먹어본다.

 

오늘은 내 바람처럼 드디어 비가 왔다. 
비가 온 것은 단지 비가 올 때가 되었기 때문에 내린 것뿐이다.
하지만 나의 간절한 바람이 0.001% 정도는 보탬이 되지 않았나 하고 우겨본다.
그게 진짜든 아니든 사실 상관이 없다. 어찌 됐든 나는 마음속으로 기우제를 지냈고, 비가 왔다는 결과가 남았다.
마음속 기우제를 지내지 않았더라면 비가 왔을 때 이렇게 우길 수 있는 에피소드도 없었을 것이다.

선조들은 기우제를 지낸 뒤 비가 내리면 신령에게 감사하는 뜻으로 다시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급할  때는 열심히 제사를 올렸는데 이루어진 뒤에 외면하면 도리가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나도 얼른 내 자리를 찾아 고마운 내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날이 오기를.

 

210821_
비 오는 날의 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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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ヘ        ||
|| (* ´ ー`)   오늘도 잘 
|ノ^⌒⌒づ` ̄\  살았다-!
( ノ   ⌒ ヽ   \     너도, 나도 수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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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ノ||―――――||